스케일과 비례)
그리스 사람들은 그들이 관찰한 현상에 대하여 해석을 구하려고 하였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즉 명확한 수학적인 비례로 작용하는 것은 정신에 즐거움을 주며, 따라서 단순한 비례의 여러 줄에서 생기는 음조는 우리의 귀를 즐겁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추리로써나, 그리스 사람들은 시각 세계의 단순한 수학적 비율과 청각 세계의 협화음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하나의 음조가 생겨날 때 무엇이 일어나며, 듣는 사람에게 어떻게 감동을 주는가 하는 것을 아무도 설명할 수 없는 한, 그 관계는 신비한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물리적 세계의 단순한 수학적 비율을 감득할 수 있는 특별한 본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이것은 음악에 관해서는 입증되었으며, 시각적인 치수에서도 지닐 임이 틀림없을 것으로 믿어졌다.
흔히 간단한 치수를 사용하는 건축은 그 이후에도 자주 음악과 비교되었다. 건축은 얼어붙은 음악이라고 불려왔다. 스케일과 비례가 건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음악에서 보통 조화나 부조화라고 불리는 것과 같은, 자연스러운 효과를 가지는 시각적인 비례는 없다.
음악의 음색은 규칙적이며 주기적인 진동으로 발생하고 또 일정한 음조를 가지는 음향이라는 점에서 다른 우연적인 소리와는 다르다. 현을 때려서 일어나는 진동은 일정한 주파수의 비율을 가지는 주조음과 주조음의 2배, 3배... 의 주파수를 가지는 배음을 구성한다. 단순한 주파수의 비를 가지는 여러 음색은 같은 배음을 가지며, 그것들이 동시에 울렸을 때 새롭고 절대적으로 규칙적인 진동의 주기가 생기며 역시 음악적인 음색으로 들릴 것이다. 그러나 만일 약간 다른 진동 주기의 음파가 움직인다면 거기에 생기는 음은 일치하지 않고 곹 바로 불쾌감을 주게 된다. 만일 15:16의 주파수 비율을 가진 두 개의 음파를 동시에 일으킨다면, 한쪽이 15회, 다른 쪽이 16회 진동할 때마다 두 음파는 서로 보강한다. 이것은 여분의 큰 진동을 일으켜서 그 강한 울림 사이에는 진동이 서로 상쇄하는 점이 있어서 실제로는 들리지 않게 된다. 그 결과 아주 불쾌할 수 있는 괴상하고 떨리며 고르지 못한 음의 연속이 된다.
그러나 시각의 세계에는 이와 유사한 것은 없다. 왜냐하면 틀린 음조는 곧 알 수 있는데 반하여 건축에서의 사소한 불규칙서의 세심한 측정에 의해서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15:16 길이의 비례를 가지는 두 개의 줄을 동시에 퉁기면 그 소리는 확실히 불쾌한 음이다. 규칙적인 기둥 간격으로 분할된 건물에서 그와 같은 율의 비례가 채용되었다고 해도 아무도 그것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건축적 비율의 음악적 협화음과의 비교는 암시적 비유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건축적 비율의 원리와 음계의 수학적 원리와의 유사성을 밝혀내려는 수많은 시도가 있었다.
고대로부터 많은 주의를 끌어온 하나의 비율(우연히도 음악에는 대등한 것이 없다)이 있다. 그것은 이른바 황금분할이다.
피타고라스와 그의 제자들은 그것에 관심을 가졌고, 오늘날에는 르코르뷔지에가 [르모듈러]라는 비율 원리의 기초를 거기에 두고 있다. 하나의 선분을 나누어서 한쪽이 다른 쪽에 대한 비가 다른 쪽이 전체에 대한 비와 같게 되는, 두 개의 서로 다른 부분이 될 때 황금분할로 양분되었다고 한다. 이 두 부분을 각각 a와 b라고 한다면 a:b의 비율은 b:a+b의 비율과 같게 된다.
아메리카의 저술가인 콜린 로에는 팔라디오의 별장과 르코르뷔지에의 주택과 비교하고 그것들의 비례관계에 현저한 유사성이 있음을 설명하였다. 건물 자체와는 별도로, 우리는 평면도와 건축에 대한 예술과 자신의 의견과의 두 가지를 다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은 흥미 있는 연구이다.
팔라디오는 음악의 조화로운 비율에 따른 수학적인 단순 비율로 작품을 만들었을 뿐 황금분할을 생각한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르코르뷔지에는 전체가 비대칭인 다른 모양의 방들을 만들었으며, 중요한 분할지점은 황금분할에 근거를 두었다. 그 후 르코르뷔지에는 더욱더 황금분할에 관한 탐구를 계속하였다. 그는 그가 설계한 유명한 마르세유의 집합주택의 전면에 한 사나이의 형상을 엷은 부조로 나타내었다. 이 사나이는 조화의 본질을 나타낸다고 그는 말한다. 그 형상은 인간의 신체의 비례관계뿐 아니라 황금분할에 따른 더 작은 치수도 나타내고 있으며, 그 건물 전체의 모든 척도는 그 형상에서 끌어낸 것이다.
필요한 방과 그 넓이는 건축계획에서 결정되지만, 방의 모양은 건축가의 손에 달려 있다. 곡선 혹은 다각형 등의 기묘한 형태를 제외하고 단순한 사각형만을 생각해도 같은 면적은 가지는 사각형은 무한히 많다.
이것은 필요한 용적의 사무실, 거실, 강당 등의 삼차원 공간이 무한히 많은 비례로 디자인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무수히 많은 공간의 형태 중에서 건축가는 서로 조화된 것은 어느 것인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이러한 문제는 음악가가 어떤 음표와 쉼표를 조합하면 음악적이며 어떤 음표와 쉼표의 조합이 소음에 지나지 않는가 하는 것과 같다.
비례의 상대적 가치와 실제적인, 또는 심리학적 가치에 대한 날카로운 센스는 훌륭한 건축가가 될 수 있는 귀중한 자질 주의 하나이며, 가장 체득하기 어려운 것이다. 작은 건물을 디자인할 때는 상식과 추리는 좋은 효과를 거둔다.
여기서 예술가의 우수한 소질인 프로포션의 감각이 필요하며, 이것은 형태와 리듬과 스케일에 대한 생각을 조합하여 조화를 만들어 낸다. 이 감각은 선천적이기는 하지만(어떤 사람은 갖고 있으며, 어떤 사람은 갖고 있지 않다.) 인간은 우주의 모든 조화 중의 일부이며, 조화에서 태어난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감각은 잠재적으로는 모든 사람이 가진 것이다. 보통 사람의 경우는 교육이나 취미 활동에 의해 이 감각을 키울 수 있고 재능이 없는 자를 예술가로 만들 수는 없으나 적어도 예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을 정도로는 키울 수 있다. 그러면 무엇이 건축에 프로포션을 주며 좋은 프로포션이란 무엇인가?
이러한 문제에 부딪히면 마치 고승이나 높은 경지에 이른 사람만이 출입할 수 있는 신비의 문을 두드리는 것처럼, 갑자기 불안한 기분에 싸인다. 반면, 이제 문을 들어선 이 멋진 디자인 린다(design land)야말로 인간 본래의 나라이며, 자기의 세계와 우주 창조의 조화를 묶는 길의 영원한 본질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최선을 다한 우리들의 작품이 우주의 섭리와 같은 자연의 걸작과 조화를 이루는 완성체가 되었다고 느낄 때 건전하고 상쾌한 기쁨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두 개의 차원 사이의 관계라고 할 수 있는 프로포션은 치수를 재지 않아도 한뜻을 갖고 있다. 그것은 순수한 기하학적 분야이다. 예를 들면 기하학에서 정방형의 프로포션이라는 1:1의 관계는 1인치 평방, 1마일 평방 등 어떤 크기이든 간에 모든 정방형에 대해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다. 이것을 절대적 프로포션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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